원래는 해비타트 집고치기 봉사를 1년에 한 번씩은 참여하곤 했었지만, 올해는 코로나 19 때문에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해비타트 홈페이지의 봉사일정을 봐도 업데이트되는 내용이 전혀 없음. 정말이지 2020년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해가 될 것 같다.
고민 끝에 다른 의미있는 일들을 알아보다가 점자 도서 입력 봉사활동이라는 걸 찾았다. 예전에 다른 팀에서 이걸로 봉사활동을 한다는 걸 들은 적이 있긴 했었는데, 정작 내가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서울만 해도 점자도서관이 여러 군데 있는데, 그중에 사는 동네에서 그나마 가깝고 개인 봉사자도 참여가 가능한 마포점자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기로 했다.
http://dream.nl.go.kr/hosting/311550/index.do
점자 입력 봉사를 하기 위한 과정은 이러했다.
1. 우선 마포점자도서실에 내방해 교육을 받는다. 매일 하는 교육이 아니라서 도서실에 미리 연락해 가능한 날짜를 확인해야 한다.
2. 그 다음엔 타이핑을 하고 싶은 책을 2~3권 정도 골라서 봉사가 가능한 책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이미 다른 봉사자가 진행 중이거나 완료한 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3. 봉사가 가능한 책이라면 교육시간에 주는 입력 매뉴얼을 참고해서 5~7페이지 분량의 초안을 작성해 1차로 검토를 받는다.
4. 이때 별 문제가 없으면 나머지 내용을 최대 3달 내에 입력 완료해서 담당자 분께 보내면 된다. 물론 오타가 없는지 확인해서 보내는 건 필수! 훈글 프로그램에 내장된 맞춤법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된다.
원래는 좋아하는 문학작품으로 하려다가 마음을 고쳐 먹고 마케팅 관련 책으로 골랐다. 꾸준히 읽어야 하는 건 알지만 집중력이 바닥으로 떨어진 요즘에는 한 권을 끝내는 것도 쉽지 않아서 이참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책 이름도 마케팅의 정석이라서 어렸을 때 수학의 정석 공부하던 생각도 나고 암튼 그랬다.
해 보니 점자 도서 입력 방법은 일반 도서와는 다른 점이 참 많았다. 페이지나 제목 표시 방법부터 강조, 들여쓰기, 기호 등 입력 방법이 아주 세세하게 정해져 있다 보니 초반에는 한 문단, 한 페이지를 끝낼 때마다 틀린 게 없는지 매뉴얼을 뒤지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 먹었다. 그래도 30페이지 정도까지 치고 나서부터는 익숙해져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중간중간 그림들이 나올 때마다 매번 처음처럼 막막했다.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면서 데이터의 시각화에 대해 많이 배우고 고민했었지만, 시각장애인 분들을 대상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부족함이 많았지만 보다 더 쉽고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표현에 대해 고민을 참 많이 했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늦어도 한 달 안에는 끝낼 줄 알았는데, 쉬엄쉬엄 하다 보니 거의 세 달을 다 채워서야 끝마칠 수 있었다. 담당자 분께 수정사항이 없다는 피드백과 함께 그간 고생했다는 메일을 받으니 왠지 뿌듯. 마케팅에 관심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음 좋겠다.
하나 아쉬운 점은 봉사에 쓴 책은 도서실에 기증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책을 기증하고 나서야 봉사시간을 입력해 줌.
다른 점자 도서관도 같은 운영방침인지는 모르겠다. 내 생각엔 이건 봉사자에게 관련 비용까지 부담시키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도서실에서 주기별로 도서를 구비하고 그 책 중에 봉사자가 골라 입력을 하게 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봉사자가 중도 포기할 경우 책을 반납받는 게 힘들어서 그런거라면 보증금을 받으면 될텐데. 아무튼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그래도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 집에서 혼자 작업할 수 있는 비대면 봉사활동이라는 점은 참 괜찮은 메리트였다. 오타나 필수 입력 내용 누락이 없는지 봐야 하다 보니 책 내용도 그냥 읽을 때보다 좀 더 꼼꼼하게 읽게 된다. 이왕 읽을 책이라면 정독도 하고 지식의 나눔까지 할 수 있는 점자 입력 봉사활동에 도전해 보는 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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